개인노트

부린이로 산다는 것은

단테, 연초록, 정독, 그리고 종로학파 2020. 9. 1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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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에 집앞 공원길 사진을 한장 찍었습니다.
청초하기만 한 여름의 끝자락도 이제 제법 가을의 문턱을 넘어 또 하나의 계절을 향해 치닫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몬테소리님의 글을 읽었고 궁금해하신 강선마을 앞 호수공원 사진을 댓글삼아 선물로 드렸습니다, 누구는 한탄을 하며 '유식함' 속에 머물겠지만 또 누군가는 정진을 위해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는 말.

정작 그럴듯한 변명 중 하나인 "부린이"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무려 수십년 동안을 사고 판 집들임에도 여전히 각자는 "부린이"라는 허울 속에서, 그저 공인중개사의 말 몇마디와 이 카페에서의 글 몇줄로 수억원도 넘는 남의 빚과 내 전재산을 걸고 위험하기까지 한 도박을 감행하곤 합니다.
(운전처럼 면허 같은 게 혹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또 "부린이"의 삶은 애처롭고도 절박합니다.
문제는 결국 '감'으로부터 온 지름신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의 후회가 아닌, 그저 '학습'의 기대효과로 얻는 간단한 타이밍에의 터득과 훈련의 연속 정도일 것 같습니다.

모든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고도 배웠던 적이 있습니다.
- 이게 어쩌면 '학습'의 목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말로는 '지혜' 정도일까요?... 그저 '정보'랑은 다를,
이제 지식도 경험도 아닐 '지혜'가 필요한 시대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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