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이장욱, '객관적인 아침' (다시 봄, 이장욱)

단정, 2026. 3. 1. 08:46

 

 

   

 

   객관적인 아침 

  

   

   객관적인 아침 

   나와 무관하게 당신이 깨어나고 

   나와 무관하게 당신은 거리의 어떤 침묵을 떠올리고 

   침묵과 무관하게 한일병원 창에 기댄 한 사내의 손에서 

   이제 막 종이 비행기 떠나가고 종이 비행기, 

   비행기와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완벽한 하늘은 

   난감한 표정으로 몇 편의 구름, 띄운다.  

   지금 내 시선 끝의 허공에 걸려 

   구름을 통과하는 종이 비행기와 

   종이 비행기를 고요히 통과하는 구름.  

   이곳에서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라진다. 

   지금 그대와 나의 시선 바깥, 멸종 위기의 식물이 끝내 

   허공에 띄운 포자 하나의 무게와 

   그 무게를 바라보는 태양과의 거리에 대해서라면. 

   객관적인 아침. 전봇대 꼭대기에 

   겨우 제 집을 완성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 

   나와 당신은 비행기와 구름 사이에 피고 지는 

   희미한 풍경 같아서. 

 

 

   # 이장욱, 내 잠 속의 모래산 (민음, 2002) 

 

 

   ... 

 

 

   다시 봄, 이장욱 : 

 

 

   다시 봄입니다. 

   '미래파의 기수' 이장욱 시인을 꺼낸 건 순전히 우연입니다. (다음번은 허연 시인입니다.) 

   생각을 더듬어 보니, 지난 두 해의 봄에도 이장욱 시집을 꺼내 읽었더랬습니다. 이유는 알 길 없습니다. 

   삼일절 아침입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지난지도 벌써 한 달이며, 이제 곧 '경칩'입니다. 남쪽 지방에는 이미 매화가 만개하였고, 동백섬에도 동백꽃이 활짝 피었을 겁니다. 이어서 산수유와 개나리 그리고 목련과 진달래 등도 곧 피어날 기세입니다. 진짜 봄입니다. 

   시에서 전혀 "무관"하기만 한 "나"와 "당신"은 제각기 "무관"하기만 한 질서 속에 또 그 관계 속에서조차 결국 "소실점"이라는 귀결점을 찾습니다. 다만 그걸 꼭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해선 말을 아껴두려 합니다. 그저 "무관"하기만 한 "비행기와 구름 사이에 피고 지는 / 희미한 풍경"이라면? 주체를 상실하고 의미가 퇴색한 "아침"은 어쩌면 '성취'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극복'의 대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무튼, 

   따지고 보면 '미래파'는 전통적 서정시로부터의 '독립'을 주창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며, 또 그 '독립'을 이루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 결과가 좋든 아니든간에... 더구나 과연 '미래'를 지향한 것일까? 답하기 곤란합니다만) 

   지난 역사를 통틀어 왜구와 오랑캐들에 맞선 의병활동이 있었고, 또 오늘 일어섰던 삼일운동이 있었고, 식민지를 벗어나려는 독립운동이 내내 있었으며, 또 해방 이후에도 각종 민주화운동들이 있었고, 또 앞으로도 그 어떤 사회운동이 펼쳐질까를 잠시 생각해 봅니다. 

   이른바 한 '세대'를 아우르는 호칭에 관한 문제라면, 더더욱 할 말이 많아집니다. 명색이 '신서정'의 대표적인 주체라면 과연 'MZ세대'일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데, 차라리 '광화문세대'나 '여의도세대'라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특정 '세대'는 특정 '시대'를 대변해야 하며, 그 '시대'를 극복하려는 노력 자체이기도 합니다. 

   삼일절 아침에 잠시 생각한 그 대답은... '신서정'이라는 (벌써 또 하나의 '레거시'가 다 돼버린) 담화조차도 넘어설 그 무엇이어야 더 맞겠다는 견해들도 좀 생겨납니다.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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