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예향의 땅에서 노동을 말하다)

정독, 편집장 2026. 1. 23. 05:46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 같은 제목의 시집 (느린걸음, 2022)


   ...


   예향의 땅에서 노동을 말하다 :


   행사 관계로 처음 내려와 본 도시, 이곳 광주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소개한 시인들은 주로 20세기를 풍미한 선배들부터 시작을 해서 지난번까지 황지우, 나희덕, 곽재구 같은 이름들을 열거했다면 이제니 시인과 그 이후를 언급하기 전에 이어서 박노해, 이성복까지는 마저 함께 자리를 마련해야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정 탓에 이제야 이 얘기를 꺼냅니다.)

   광주에서 읽는 박노해 시집은 여전히 남다른 생각들을 갖게 만듭니다.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데뷔시집을 펼치려 했다가도 또 근래에 보기 드문 열풍을 기록했던 세 번째 시집이거나 이미 절판된 책, 또 아니면 최근작 등을 고르려 하다 결국 맨 마지막에 손에 쥔 시편은 지난 1998년의 무기징역 사면에 따른 석방 이후에 처음으로 TV에서 접했던 그의 모습 또 육성으로 낭송했던 시 <너의 하늘을 보아>를 기록해 놓는 편이 더 낫겠지 싶습니다. (꽤 오래된 기억인데, 곡절은 잘 모르겠지만 이 시는 그 기억 때부터로 해도 무려 20년도 넘게 지난 2022년에야 뒤늦게 표제시로 등장한 서지정보를 남겨놓습니다. 제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어서 따로 밝힙니다.)

   시는 지극히 평범해서 따로 분석을 필요로 하진 않겠고, 오히려 요즘 한창 유행인 인스타그램의 글귀들과도 비슷한 모양새입니다. (더구나 시인은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비슷한 활동을 계속 중인 한 명의 초대형 '인플루언서'이기도 하죠.)

   어제 행사 때 작가회의에서 오신 한 분이 그런 화두들을 꺼냈습니다. 자본과 AI, 그리고 인간.
   어쩌면 이 단어들이 갖는 함의를 가장 정제된 언어로 다루고 있는 시인 중 한 명이 박노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좀 드는데, 물론 이건 사상과는 또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일 테죠. 아무튼,

   최초의 '노동자' 신분을 가졌던 시인,
   끝끝내 '타인'만을 위한 시를 썼던 시인,
   가장 '정치적'인 사안들을 전면에 내세운 시인,
   시풍과는 전혀 무관하게도 '시적'인 삶을 산 시인,
   그래서 그의 이름을 기억해두려 합니다.

   '전업'의 1년을 꼬박 보내고 이제 또다시 새로운 '노동'을 생각하려는 올 한 해의 제 계획 역시도 이 불멸의 땅에서 맞는 새벽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광주에도 눈이 제법 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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