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두리에 사는 사람
그는 테두리에 사는 사람
아직 바깥은 아닌
이미 안은 아닌 곳
안과 밖 중 과에 살아요
그의 농담에 웃는 것은 언제나 그뿐이다
다리를 접고 등을 말고
빛으로 짠 관에 누워 죽음을 흉내 내는 일
그러다가 잠드는 일
축축한 변기 뚜껑이 등에 닿을 만큼 깊숙이 앉아도
두 무릎이 화장실 문에 닿는 꿈을 자주 꾸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면
좋아야 좋은 거라고 대꾸하는 그에게는
얼굴이 부족했다
걔 얼굴 안 쓰고 소리로만 웃는 거, 소름 돋지 않니?
어떤 이가 다른 이 욕하는 말을 들은 뒤로
그는 웃지 않기로 했다
완전한 바깥이 되지 않기 위해
안의 끄트머리를 꼭 쥐고 걸었다
그가 있는 곳을
안에서는 바깥의 시작이라 불렀다
밖에서는 안의 끝이라 불렀다
테두리로 밀려난 사람이 있다
테두리에서 버티는 사람이 있다
같은 하늘을 머리 위에 두었다는 것이
유일한 안심이 사람이 있다
# 송정원, 반대편에서 만나 (창비, 2025)
...
'경계인'이 대세가 된 세상, 21세기판 '소외'에 관하여 :
오랜만에 펜을 들었습니다. 늦여름의 한복판에서 지난 칠월을 얘기하던 때를 되짚으니 한 달을 훌쩍 넘긴 시점에야 비로소 글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이유는 뭐, 여럿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신상의 변화도 좀 있었고 말 그대로 '그냥' 하는 일에 대한 일말의 회의감도 없진 않았다는 게 유일한 변명이 될 것만 같습니다. 아무튼, 창비시선 중 가장 최근에 나온 시집들을 살펴보는 중입니다.
송정원 시인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다섯에 <시인동네>를 통해 등단을 해 꼬박 5년 만에 첫 시집을 상재합니다. 이제 불혹의 나이, 그의 앞길에도 더 이상 '경계선'만이 아닌 '중앙선'이 그어지길 함께 응원해 봅니다.
시는 비교적 단순해서 굳이 부연을 할 필요까진 없겠습니다. 사르트르가 말한 대로 "그 사회의 가장 정확한 시선은 가장 '소외'된 이들의 시선"이라는 말을 또 떠올릴 만큼,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누군가는 늘 그 '소외'가 어쩌면 내 것일까 하는 두려움에 직면하곤 합니다. 자본이 철저히 숨겨놓은 욕망의 그늘을 목도하는 순간, 우리는 이 사회가 과연 얼마나 인간적일까와 얼마나 더 밝은 미래를 보장해줄까에 대한 비판의식을 숨길 길이 없게 됩니다. 문제는 물론 그다음입니다만...
'작가'라는 직업 또한 예외가 아닐 듯합니다. 명색이 '시인'이라는 사람들은 제 밥벌이를 위해 시를 마다한 채 공사판과 교단과 직장 내 일터로 앞다퉈 출근을 해야 하며, 그렇다면 그가 과연 '시인'인지 아니면 막노동꾼이나 직장인이나 교유계 종사자인지 헷갈릴 때가 더 많으니까요. 어떤 시인의 말처럼 이제 '시인'이라는 타이틀은 더 이상 직업이 아닌 것이라고 보는 게 훨씬 타당해지는 대목이겠죠... 또 아무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신분은? 다름 아닌 '비정규직'일 것 같네요... 직장에 소속돼 있긴 해도, 여전히 직장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계층은 가장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조차 스스로 확보해야 하는 부담을 늘 짊어진 채 출근을 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그조차도 얻지 못한 이들한텐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겠지만) 21세기 사회에서 '노동'이 갖는 현주소를 가장 적나라히 드러내는 대목일 수도 있겠죠...
주말인데 새 시집을 소개하는 자리부터 너무 어두운 그늘만을 얘기하게 된 것 같아요. 짧게 줄이고자 합니다.
개인 일정 탓으로 주말까지는 여전히 좀 바쁠 계획입니다. 팔월의 중순을 넘어서고 있는 네 번째 주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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