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김리윤, '재세계reworlding' (1월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단테, 연분홍/연초록, 정독, 그리고 종로학파 2024. 2. 1. 04:40

 




[베껴쓰고 다시읽기] 1월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재세계reworlding
   
   
   지나간 일은 다 잊자
   지나간 일은 다 잊는 거야

 

   그는 이 대사의 다음 장면에서 죽었다
   영화 속에서 영화는 계속될 것 같았고
   그 사람은 영원히 아무것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영원히 잊게 될 것이다

   휴대폰 불빛이 신경 쓰여서 도무지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어
   극장에 꽉 들어찬 어둠은 그 작은 불빛 하나 숨겨주지 못하고
   주인공은 12월 밤거리의 쏟아지는 불빛 때문에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것도 알아보지 못한다    

   오래된 거리를 걸으면 가로수들은 영원히 자랄 것 같다 정원사의 손에서 떨어지는 잎사귀와 뚝뚝 분질러지는 나뭇가지의 미래를, 잔디가 깎이는 동안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통을 다 기억하면서

   12월엔 어디에서나 커다란 나무에 작은 전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불빛이 들어오고
   빛을 끄고 불을 켜면 다 똑같아 보이는

   세계의 근원은 이제 전기라고
   인간은 빛보다 한참 느린 속도로 움직이면서 원하는만큼의 빛을 만들 수 있다
   운전자가 죽은 다음에도 계속 달릴 자동차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생명의 낭비를 줄여주는 기술입니다
   그러나 너무 환한 곳에서는 생명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높은 조도에서는 사물을 정확하게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밝게 빛나는 하늘과 흰옷을 입은 사람을 구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계는 점점 더 낮은 조도로 진화하고 있어
   매년 20퍼센트 정도의 광량이 감소하고 있대

   희박한 태양광 아래에서 낮아지는 조도의 세계에서 우리는 함께 희박해지겠지 정말 좋은 일이다 좋은 미래가 오면, 도로 위에서 공들여 식벽해야 할 산 것들이 없는 그런 미래가 온다면 생명이 낭비되는 일도 없을 거야

   앞서 걸어가는 사람의 등에 죽은 짐승의 등이 포개져 있다
   너는 어쩜 죽어서도 이렇게 따뜻하고 부드러운지
   짐승의 등을 어루만지며

   아름답다 감탄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서 아름다움은 시작되었다
   이것은 전기로 작동되는 신이 들려준 이야기다

  
   * 김리윤, 투명도 혼합 공간 (문지, 2022)
    
    

   국내 문단에서 자타가 공인할만한, 즉 명실상부한 '등단'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들인 이른바 '메이저' 공모들은 매년 홀수달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해마다 불과 열넷 혹은 열다섯 군데 뿐인 이 자리를 놓고 수만에서 수십만 명의 문학도들이 치열하게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고도 이해하셔도 되겠습니다. 

   매년 3월 1일은 월간 현대시 신인추천이 있으며,

   3월 말일까지로 해 현대문학 신인추천과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이 있습니다.

   5월 말일까지로는 문학동네와 창비 신인상이 있습니다.

   또 매년 7월 말일은 문학사상 신인상 공모가 펼쳐지게 됩니다.

   매년 9월 5일은 민음사가 주관하는 김수영 문학상이 있겠고요.

   마지막으로 통상 11월 말일까지로 마감하는 7개 중앙 일간지들의 신춘문예가 거의 한꺼번에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해마다 총 14명 또는 15명까지의 신인들을 배출하는 시스템입니다. (문학사상과 엇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지곤 했던 실천문학 신인상이 작년부터 잠정중단된 상태라서 올해는 어찌될까 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이를 포함하면 한 자리가 더 늘어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메이저' 타이틀의 전부입니다. 

    

   어제는 역대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출신 세 명의 시인들을 읽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어제 저녁에 1월의 마지막 작품으로 소개해놓을까 했는데, 설핏 잠이 든 까닭에 이른 아침에야 뒤늦게 올려놓습니다. 

   벌써 2월입니다. 또 한 해의 레이스를 시작하려는 시점, 비록 '등단' 자체가 목표가 될 순 없겠지만 같은 운명의 문우들과 함께 계속 걷는다는 취지에서 한 번 연간 일정을 소개해놓는 자리입니다. (실제로 '등단'보다 더 중요한 '출간'의 문제라면, 굳이 '메이저' 타이틀을 원치 않는다면 더더욱 먼저 신경써서 준비하고 또 추진하는 편이 그렇게 부지런히 정진하는 편이 훨씬 더 맞겠다고도 생각해봅니다.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써낼 수 있는 책의 분량은 늘 한정적인 까닭이겠으니까요.) 

   벌써 봄기운이 완연해집니다. 입춘을 코앞에 둔 시점이기도 하고요. 

   올 한해도 변함없이 '건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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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oLjQ6jXyY7Y?si=5ttCUemHoMKBRp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