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솔로지 2
저자의 말
희망과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이다. 비관에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가 비관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기 쉬운 지금, 우리에게 시는 특별하고도 소중하다. 시란 다른 세계를 꿈꾸도록 하며,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세계를 우리 앞에 출현시키기 때문이다. 세계의 가능성을 개진하는 것이야말로 시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한권의 시집은 하나의 세계에 준하는 것이고, 한권의 시집을 읽는 일은 하나의 세계를 마주하는 일이므로, 시를 사랑하는 우리는 한권의 시집을 읽으며 우리 자신조차 몰랐던 우리의 가능성을 알아차리게 된다. 선택지가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비관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길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다른 세상을 상상할 힘이 아닐까. 우리는 시를 통해 그 힘을 잠시 빌려볼 수도 있다. 최소한 창비시선이 시를 통해 꿈꿔온 것은 바로 그런 일이었다.
(…)
이 시집이 아우르는 것은 8년의 시간이지만, 신경림의 『농무』가 발간된 1975년부터 살핀다면 지금까지 5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창비시선 500이라는 이 놀라운 궤적은 창비시선을 꾸준히 읽고 사랑해준 독자들과 함께 만들어온 것이다. 한권의 시집이 하나의 세계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독자의 적극적인 읽기 행위를 통해야만 한다. 시를 사랑하는 이들이 없다면 시는 공중으로 흩어지는 빈 소리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시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리하여 시가 들려주는 그 낯선 목소리에 우리의 마음을 포개어볼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새로워질 수 있고, 시는 우리와 함께 더 먼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도달한 곳에서 우리는 내일로 이어지는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풍경은 다채로운 미래의 모습으로 빛나고 있을 것이다.
- 안희연, 황인찬 (창비시선 500호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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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소식을 전한 '앤솔로지'가 창비에서는 이번엔 두 권으로 나왔습니다. 안희연, 황인찬이 선정한 창비시선 401~499호까지의 시편들 중 총 90편을 수록한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은 문지의 금번 600호 앤솔로지와 같은 기간을 다루었습니다. 함께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