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방을 위한 엘레지'
방을 위한 엘레지
1
꿈이 죽은 도시에서 사는 일은 괴롭다
누군가 살해된 방에서 사는 일처럼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이
지구라는 것을 알고 있듯
봄이 겨울을 이기고 온다는 것과 그 반대도 참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뒤에 오는 것이 승리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화성이여 지구를 이기길
내일이여 오늘을 이기길
썰물이여 밀물을 이기길
그러나 봄, 여름 뒤엔 다시 겨울이고
무지노트와 지구본 연필깎이와 제본한 『예술의 규칙』을 한 줄로 늘어놓은
내 방 책상 위로
가장 나중에 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든 다른 것이 시작될 때마다
예언은 빛나며 빗나갈 테니까
여기는 방이 아니라 거리이며
나는 다만, 여기를 걸어서 지나가는 거라고
벽과 벽 사이를 서성이며 생각하는 것이다
2
이 방에는
수만 개의 유채꽃이 겨울의 자물쇠를 따고 있는 들판으로
노란 죄수복을 입은 봄이 달려 나오는 은판 사진이
걸려 있다 고인의 사진처럼
나는 책상에 기대어
여기는 바다처럼 푸른 바다이며
"푸른색으로 뛰어들어 너는 고통의 잠수부가 되었다"고
쓰는 대신
물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나
눈 쌓인 마당에 떨어지는 담뱃불 같은 것들을 생각한다
사라지고 꺼지는 것들로
잠시 환해지는 관념의 모서리
방은 눈을 녹이는 따듯한 손을 닮았다
방은 죽음을 쫓아 달라는 커다란 개다 겨울이 죽고 봄이 죽고
죽음은 항상 너무 빠르다
개의 헐떡거리는 혓바닥 위에서 담뱃불이 꺼지며 빛난다
나는 흰 도미노처럼 서서
쓰러지는 방들의 흔들리는 어둠을, 우리를 응시하는 영원한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 진은영, 계간 『문학동네』, 2018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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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읽는 시 한 편,
마음을 표시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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