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윗집은 오늘도 많이 더운가 보다
아무렇게나 잘라두어 우리 집 창문에 아른거리는
에어컨 실외기 호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시끄럽다면서도
마른 토마토 화분을 물자리에 밀어둔다
새순 발끝을 받치고 있는 큰 줄기
손끝이 새파랗다
너를 이렇게밖에 밀어올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누군가와 닮았다
왜 자꾸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걸까,
그냥 그렇게 된 건데 우린
순진한 토마토일 뿐인데
어차피 충분히 어른이 되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자신을 떨어뜨려야 할 텐데
땅에서 났으면서도
먼 하늘만 보고 자라
땅에 묻히기를 두려워하는
엄마 없는 엄마와 엄마밖에 없는 딸
토마토는 어디에서든 뿌리를 내린다
홀로 오래 있었던 토마토 과육에선
제 심장을 디디고 선 싹이 자라곤 한다
해묵은 양수를 받아마시며,
그것은 꽤나 외로운 일이다
그래도 토마토는 그렇게 한다
# 안수현, 2025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
...
오월을 시작하며 :
노동절을 시작으로 해 연차 및 주말, 또 어린이날과 사월초파일 그리고 대체휴무까지로 해 엿새 동안의 긴 긴 연휴를 보낸 분들이 적잖이 계실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오월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이 오늘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첫 출근길에 띄워보려는 시 역시 올해 신춘문예의 당선작입니다. 음... 비록 "풀타임" 2년차에 불과하긴 하나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신춘문예 도전기"가 될 신문사이기도 해서 그동안 차마 쳐다보지를 못한 부분도 있었겠죠. 아무튼, 뒤늦게라도 당선자에겐 진심 어린 축하와 격려를 함께 보태고자 하고요.
1998년 생으로 이제 만 스물 일곱이 된 당선자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등단'의 영광을 안게 된 셈인데, 실은 졸업 후 5년 차가 될 동안 끊임없이 '등단'의 문을 두드리고 계속 도전해 왔던 이력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모교 인터뷰 참조) 심사평은 이렇습니다. ;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덮을 만한 사건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2024년 이 땅에서 일어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현실이 문학을 압도해 버린 낯선 분위기 속에서 시 응모작들을 읽었다. 기후 위기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강세였고, 슬픔과 우울의 감정을 자기 고백적으로 드러낸 시가 자주 눈에 띄었다. 고단한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외롭고 무기력한 주체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듯했다. (중략)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외 4편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에서 빚어지는 생활의 감각이 돋보이는 시들이었다. 어머니로부터 유전되는 돌봄과 성장의 문제를 식물의 상상력을 통해 그려내는 시선이 믿음직스러웠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마음과 외롭지만 끝끝내 살아내는 질긴 생명의 온기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김선오, 이경수, 이제니, 황인숙)
제법 시끄러운 정국이 연휴 기간을 관통하고 있는 듯한 요즘이지만, 세밑과 정초를 뒤흔든 소위 '내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실은 더 놀라울 일입니다. 이제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더 경과한다면 (그 마무리도 아닌) 새로운 시작점을 비로소 발견하게 될 테고요.
어쩌면 이 시가 갖는 '보편성' 만큼이나 사사로운 개개인의 일상들 역시 그 어떤 새로운 시작점을 찾고 모색과 시도의 출발점에 서겠다는 마음들이라면 동일한 '보편성'을 갖지 않을까 해 다소 거창한 표현이겠어도 이렇게 힘주어 적어놓고자 합니다.
올해의 시단을 처음 연 장본인 역시 '현대시'의 새 지평을 열고자 계속 끊임없이 건필하기를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 새로운 지면에서 또다시 만날 것을 약속해 둡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