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
지친 봄눈이 녹아내리듯 엉겁결에 사라진 풍경을 놓고 다들 아무 말이 없었다
얼마가 흘렀을까, 매일같이 신앙으로 떠받들던 이들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나면 이제 남루한 공터엔 더 이상 '광장'이라는 글자를 붙이지 않아도 좋았다
때때금 찾아드는 까마귀 떼도 오늘은 나뭇가지를 쪼아대지 않고, 수요일마다 시끄럽던 확성기들은 여전히 악을 쓰며 귓가를 어지럽히고
지친 봄눈이 언제 다 녹았냐며 누군가 물었는데, 다들 아무 대답을 않고 침묵했다
그리움의 팔 할은 후회이지만,
시간을 다시 되돌이킬 순 없어
후회를 않는 편이 낫지도 않아
그저 조용히 앉아서
말이 없는 연못을 보고 있어
떠난 이는 떠난 그대로
남은 이도 남은 그대로일 뿐
싹이 또 틀 거야
해마다 되풀이해 온 풍경을 놓고 진작에 알아챈 이들은 이미 떠났고, 미련한 미련처럼 자리를 지킨 이들도 조금은 지쳤을 뿐
지치지 말기로 해, 그게 맘대로 되나
영원한 게 없는 거잖아
영원한 게 없을 뿐이기에, 매일같이 신앙으로 떠받들 일도 없어지고 나면 다시금 찾아드는 햇빛에도 더 이상 설레는 마음도 사라져서 좋았다
성급함을 대신한 침착함 속에는 에너지가 없었고, 인류는 에너지 고갈이 아닌 종족의 멸종을 향하여 그 침착함으로 치닫고
자꾸 누가 봄눈을 물었는데, 누구였지?
눈을 돌려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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