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고 다시읽기] 빼어난 문장, 다음 그리고 또 다음... (박준, 바위) :
바위
마름 없는 물이 흘러나오던 바위 아래에는 녹빛의 작은 소沼도 하나 있었습니다 밤이면 아이들이 서로의 서투름을 가져와 비벼대었고 새벽에는 무구巫具들이 가지런히 놓이던 곳입니다 촛농과 술병과 인간의 기도와 아린 혀 들이 오방으로 섞였습니다
어느 해 겨울부터 바위에는 부처가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한 젊은 무당이 그려두고 간 부처의 그림이 가부좌를 틀고 잔설을 덮고 있던 것입니다
비와 눈이 많았던 몇 해가 더 지나자 아이들은 바위 앞에 겁을 벗어두고 시내로 떠났습니다 빛에 바랜 부처의 상반신이 먼저 지워졌고 무당들도 바위로 오르지 않았습니다
이제 바위에 그려진 부처 그림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이 넓어지려 넓어진 것이 아니고 물이 흐르려 흐르는 것이 아니듯 흐릿해지는 일에도 별다른 뜻이 있을까마는
다만 어떤 예의라도 되듯 바위 밑 여전히 진한 녹빛을 내는 소가 쉴 새 없이 몸을 뒤집고 있었습니다
*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지, 2018)
빼어난 문장은 종종 부러움과 스스로에 대한 한탄으로까지 이어질만큼 매우 매력적인 삶이게 됩니다. 그 부러움을 닮고자 또는 그런 한탄을 더 이상 하고싶지 않아서 계속 글을 쓰는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와 오늘,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입니다. 예전에 "맑고 깨끗한 시를 쓰겠다"고 후배들한테 일갈했던 경험으로는 과연 그동안의 습작들이 그랬을까에 대한 자괴감마저 종종 들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써보려고 꽤나 노력해온 흔적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박준의 시 한 편을 꺼낸 연유도 실은 그렇습니다.
비가 내리고 곧 한파가 몰아닥칠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 잠에서 깨자마자 집밖을 서성였나 봅니다. 빗방울은 하나 둘 떨어지더니 지금은 또 멎었습니다. 바람은 아직 가벼이 부는 편인데, 아침이면 추워질까도 모르겠네요...
조직개편 이후로 곧장 산하조직 재편 및 팀 업무분장 등으로 일과시간은 내내 각종 회의와 기존 자료의 인수인계, 새로 맡게 될 업무에 대한 실행방안 작성 등을 해내느라 연말임에도 다소 분주해진 편입니다. 대부분의 직장들에서는 대동소이한 풍경일 것으로도 미루어 짐작합니다.
신춘문예 심사결과가 종종 신문에 나오곤 하는데, 최종 당선자는 아직 오리무중인 상태이니 너무 들뜨거나 보채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는 더 좋을 것 같군요... 대개는 크리스마스 전에 이미 통보를 끝낸 관행들을 가졌던 경험이 있어 넉넉히 차기 응모작들을 준비하는 편이 오히려 생산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오늘의 박준 시인이 있기까지는 무려 "100회 이상의 낙선"이라는 값진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벌써 목요일입니다. 내일 재택근무가 있으므로, 또 오늘 하루만 잘 버텨내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임하는 아침입니다.
다른 분들도 어떻든간에 "내일"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한 방식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https://youtu.be/K_9N5KvxdM0?si=UZ5rDnC1wI5yP2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