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신춘문예 D-2.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 10선 (#1~#5)

단테, 정독... '종로학파' 2023. 11. 28. 16:37




신춘문예 D-2.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 10선 :
 

1.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大地 (신동엽)


<序 話>

당신의 입술에선 쓰디쓴 물맛이 샘솟더군요, 잊지 못하겠어요.
몸양은 단 먹뱀처럼 애절하구 참 즐거웠어요, 여름날이었죠. 꽃이 핀 高原
은 난 지나고 있었어요. 무성한 풀섶에서 소와 노닐다가, 당신은 꽃으로 날
불렀죠.

바다 언덕으로 나가고 싶어요.
밤하늘은 참 좋네요. 지금 地球는 旅行을 한다나요?
冠座星雲 좀 보세요. 얼마나 먼 세상일까요.......
기중 넓은 세상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그럼 그의 바깥엔 다시 또 딴마당이
없는 것일까요?

자, 손을 주세요 밤이 깊었어요.
먼저 쉬세요. 못잊으려나 봐요-우리가 抱擁턴
하늘에 솟은 바위, 그 밑에 깔린 구름
불 달은 바위 위에서 웃으며 잠들던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던 당신의 붉은
몸.

언제든 필요되거든 조용히 시작되는 序舞曲으로 그 白鶴의 大圓 휘파람 하
세요. 돌아가 묻히겠어요, 陽달진 당신의 꽃 가슴으로, 아마 운명인가 봐요.
그럼 안녕히.



<第一話>

그늘 밑 꽃뱀 얽혀 있는 山中에서 山蔘을 찿고 있었네.
그날 蔘은 보지 못했으나, 女人을 만나, 정성을 다한 씨 심거 주었네.
나락이며 보리며 木花씨며 耕地에 뿌리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마다 않데. 地
球는 이미 먼저 나온 사람들이 한 몫씩 나누어 갖고 말아 버렸데.
땅 한번 디뎌도 稅金이 쫓아 오데. 바람 마시는 값으론 코를 베어 주었네.

憶光 하늘 아리 절름거리며 지나간 초록빛 나그네 하나 있었다니라. 하여
앞도 뒤도 없는 이야기 몇 맏, 路邊에 뿌려놓고 憶光하늘 아래 神明은 처음
으로 그곳서 빛나, 벋은 무지개 宇宙를 벗어나 스러져 갔다니라.

이르노니,
지금 예까지 와 있는 歷史의 重量이여.

당신의 보따리 속에 든 人口며 昆蟲이며 傳統이며 文明이며, 모두 한떼 뭉
쳐 머리에 이고 하늘 향해 앞 발 버팅겨 보시지.

짓궂은 이야기다.
虛虛 萬年
草原이 있고, 냇물이 있고, 陽달이 있고, 毒蛇가 있고,
암과 숫 쌍쌍이 엉켜새끼 치곤 죽어져 갔다.



<第二話>

간밤에 밟히어 간 가난한 목숨들의 冥福을 위하여, 지금 어디선가 아우성치
고 있을 못된 餓鬼들을 위하여 그리고는 내일날 太陽빛 찬란히 빛나 있을 死
刑執行場 꽃바람부는 郊外, 잔디밭 언덕으로 끌려 나갈 아름다운 人類들의
눈물을 위하여.

내 동리 불사른 사람들의 勳章을 용서하기 위하여 코스모스 뒤안길 보리밥
사발 안은채 죽어있던 누나의 사랑을 위하여.

監獄돌 묻으러 갈 꽃상여의 길닦이를 위하여, 아프리카 沙漠에서 日射病으
로 눈먼 植民地兵士들의 月給봉투를 위 하여, 그리고는 먼 훗날, 당신이 서
있을 大地를 쪼개고 솟아나올 始生代岩層 깊숙히 우리의 大敍事詩를 새겨
넣기 위하여.



<第三話 >

내가 온달 때 당신은 구름 덮으시더라.
나는 遠視. 그래서 당신은 멀리 있어야
잘 생각난다 일렀더니, 싫어도 당신은 끄덕이시더라.

무엇을 너는 내게 요구코 있는 건가.
나의 肝 말인가?
금이빨 말인가?
귀 말인가?

옛날엔 명실상부 직업전투가가 있었삽니다.
이 族 저 族 팔려다니며 城門지기 호랑이잡이-이마에 뿔돋리고 양 어금니
째져나온 불쌍한 종족들이 살었답니다.

그뒤에 그들은 출세한 적도 있었읍니다. 內城에 들어와서 王座를 마련코, 部
族눕혀 九重궁궐 쌓아올리고, 백성 목덜미 위 君臨하여 천하를 호령하고.

나도 물론 氏族전쟁엔 나가 보았읍니다.
槍 들고 도끼 들고 코거리하고 귀거리하고.
닥히는대로 대갈통을 바수어 함지박처럼 머리에 엎어 쓰고.
가슴팍을 꿰어선 나무에 매달아 두고.

못난 짓 버릇 가운데 몸을 담그고
오린 세월 숨 쉬어간 사람들이여,

도끼는 신기해도
손재주가 만든 것이며
비행기는 날쌔도
땅에서 뜨는 것이다.

떡쇠의 입에는 쌀이 하루 세사발,
首相님의 大腸에는 비게가 하루 세사발,
憲章은 尊嚴해도 개호주의 안경이다.

못난 짓 그릇 가운데 몸을 담그고
오랜 세월 버둥겨 간 사람들이여,

까마귀는 내려와 선달이 가슴 위에
구데기를 쪼아서 주둥일 닦앗고,
장군님의 尊顔위에 태연히 앉아서
눈깔을 빼 먹고선 갸웃거릴 것이다.

내 고향에 피는 꽃은 무슨 꽃일까?
봄, 갈, 여름, 내 生地에 펴나는 꽃은 무슨 꽃일까?
두견이, 패랭이, 들菊?

거짓말이다. 그런 꽃은
내 고향 山川에
펴나지 않는다.

들길을 가루질러 달구지가 지나갔다.
낯 익은 얼굴들이 호박처럼 매달려
메마른 돌맡 위에 부숴져 가고 있었다.

벗이여, 눈보라 쌓이는 밤
이리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으면,
다수운, 다순 피가 돌고 있을 것인가?

벗이여, 廣漠한 원시림
人間된 거죽 홀홀히 찢어 던지고
어두운 골짝 山짐승 마을에
山돼지가 되어 두더쥐처럼 살아갈 순 없단 말인가

아름다운 바람 하늘 높이 흘러가고
億萬年 햇빛 머리 위에 퍼붓는다.

어디를 흘러가는 싸움떼이기에
그 많은 다툼에도 是非가 남았느뇨.

어디를 흘려가는 목숨들이기에
양뿔이 빠지고도 꼬리마저 잘려 있느뇨.

하면 오늘밤은 어떻게 할 테란가
「傳愛」로운 폭약이여, 「正어두운 대지에 한 가닥 양기 있어, 무릎모두 우
고 일어앉는 그림자-형클진
앞가슴 아무려 여미며 비녀는 입에, 두손은 머릴 간조롱이고 동트는 대지 溪
谷과 한 올기 맨발벗은 肉魂은 살어.

태백 줄기 고을 고을마다 강남제비
돌아와 흙물어 나르면, 산이랑 들이랑 내랑 이뤄
그 푸담한 젖을 키우는
울렁이는 내산천인데.....

맛동 마을 농사집에 태어나 말썽없는 꾀벽동이로
딩글벙글 자라서, 씨뿌릴 때 씨 뿌리고
거둬들일 때 거둬들이며, 이웃마을 어여쁜 아가씨와
짤랑짤랑 꽃가마도 타 보고,
환갑 잔치에 아들 손주 큰 절이나 받으면서,
한평생 살다가 묻혀가도록 내버려나두었던들.....

흙에서 나와
흙에로 돌아가며
永遠回歸 운운 이야기는 없어도
햇빛을 서로 누려 번갈아 태어나고,
자넨 저만큼
이낸 이만큼 서로 이물을 두어
땅 위에 눅고
사람과 사람과의
重複됨이 없이
흙에서 솟아
흙에로 흩어져 돌아갔을

인간 기생을 모를
사람들,

산정의 帝王.....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나의 발아래 저렇게 많이
山의 傾斜를 좇아 무진한 돌들이
千꼴 萬색으로 붙어 있지 아니한가.

大地에는 地勢도 靈泉도 솟는다. 하데마는,
朕이 디디고 있는 이 산은 人肉으로 構築된
말하자면 寄生塔일세.

해서 그들의 등가죽엔 강물이
흐르지 않는단 말이야.

헌데 건 그렇고, 우스운 이야기는
때에 붙어사는 그 버섯들의 살림살이 말일세.

그들이야말로
저희끼리 눈 감고 아웅하는 격,
王宮과 統治權엔 아랑곳 없으니까.
二次大戰 저물어가기 얼마전의 이야길세
豆滿江邊 어느 촌락이 지나던 길
한 할아버지로 부터 이야길
들은 일이 있네

우리하고 글쎄 무슨 상관이 있단 말요.
왜 자꾸만 귀찮게 찝쩍이느냐 말이요.
내 멀쩡한 四肢로 땅을 잃고서
강냉이, 고구마, 조를 추수하고
옆 마을 海蔘장 점북과 바꿔 오구,
시집 보내구, 장가 보내구, 장 사는데,
글쎄 뭘 어떻거겠단 말이랑요?

그러나 그들의 마을에도, 등가죽에도,
坊坊 曲曲 벋어 온 낙지의 발은
악착스레 着根하여 수렁이 되었나니.



제 4 화

어두운 대지 한 가닥 서기 있어, 무릎 모두우고 일어 앉는 그림다.

헝클어진 앞가슴 여미며 비녀는 입에,

두 손은 머릴 간조롱이고,

동트는 대지 계곡과 들녘에 한 올기 맨발 번 육혼은 살아.

태백줄기 고을고을마다 강남제비 돌아와

흙 둘어 나르면, 산이랑 들이랑 내랑 이뤄

울렁이는 내 산천인데......



맛동마을 농사집 태어나 말썽없는 꾀벽동이로

딩굴벙굴 자라서, 씨 뿌릴 때 씨 뿌리고

걷워딜 때 걷워딜듯, 이웃 말 어여쁜 아가씨와

짤랑짤랑 꽃가마도 타보고,

환갑잔치엔 아들 손주 큰절이나 받으면서

한평생 살다가 묻혀 가도록 내버려주었던들.


흙에서 나와

흙에도 돌아가며.

영원회귀 운운 이야기는 없어도

햇빛을 서로 누려 번갈아 태어나고.

자넨 저만큼,

이낸 이만큼,

서로 이물을 두고 따 위에 눕고.

사람과 사람과의 중복됨이 없이,

흙에서 솟아

흙에로 흩어져 돌아갔을,


인간 기생(寄生)을 모를

사람들.

산정의 제왕......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나의 발 아래 저렇게 많이

산의 경사를 좇아 무진한 돌들이

천꼴 만색으로 붙어 있지 아니한가.


대지에는 지열도 영천도 솟는다 하데마는,

짐이 디디고 있는 이산은 인육을로 구축된

말하자면 기생탑일세.


해서 그들의 등가죽엔 강물이

흐르지 않는단 말야.


헌데 건 그렇고. 우스운 이야기는

따에 붙어 사는 그 버섯들의 살림살이 말일세.

그들이야 말로 이런 따위,

저희끼리 눈감고 아옹하는 격,

왕궁과 통치권엔 아랑곳없으니까.


2차대전 저물어가기 얼마 전의 이야길세.

두만강변 어느 촌락을 지남 길

한 할아버지로부턴 이런 이야길

들은 일이 있네.


우리하고 글쌔 무슨 상관이 있단 말요.

왜 자꾸 와 귀찮게 찝쩍이냐 말요.

내 멀쩡한 사지로 땅을 일쿼서

강냉이, 고구마, 조를 추수하고

옆 마을 해삼장 점복과 바꿔오구,

시집보내구, 장가보내구, 잘사는데,

글쎄 뭘 어떡하겠단 말이랑요.


그러나, 그들의 마을에도, 등가죽에도,

방방곡곡 뻗어온 낙지의 발은

악착스레 착근하여 수렁이 되었나니.


그렇다 오천년 간 만주의(萬主義)는

백성의 허가 얻은 아름다운 도적이었나?




<第五話>

가리워진 안개를 걷게 하라.
國境이며 塔이며 御用學의 울타리며
죽 가래로 밀어 바다로 몰아 넣으라.

하여 하늘을 흐르는 날새처럼
한 세상, 한 바람, 한 햇빛 속에
萬가지와 萬노래를 한가지로 흐르게 하라.

보다 큰 集團은 보다 큰 體系를 건축하고,
보다 큰 體系는 보다 큰 惡을 釀造한다.

組織은 형식을 강요하고
형식은 僞造品을 모집한다.
하여, 傳統은 궁궐 한의 上典이 되고
造作된 權威는 주위를 浸蝕한다.

國境이며 塔이며 一萬年 울타리며
죽 가래로 밀어 바다로 몰아 넣으라.



<第六話>

없으려나봐요, 사람다운 사낸. 어머니, 어쩌면
좋아요. 이 숱 많은 흰가슴, 텃집 좋은 아랫녁,
꽃닢 문 입술 - 보드라운 大地에 누워 허송
세월하긴, 어머니, 차마 아까와 못견디겠네요.
荒原 말굽 달리던 黃河期 사내 자꾸 그립어요.
어데요? 그게 어디 사람이예요? 第二級齒車라고
명패까지 붙어있지 않아요? 어머니두.

저건 꼭두각시구, 저건 주먹이구, 저건 머리구.
별수 없어요, 어머니 저 눈면 技能子들을
한 십만개 긁어 모아 여물솥에 쓸어옇구
푹신 쪼려 봐 주세요. 혹 하나쯤 온전한
사내 우어날지도 모르니까요.

해두 안되거든, 어머니, 생각이 있어요.
힘은 좀 들겠지만 地上에 있는 모든 숫들의 씨
모주리 썩어 받아 보겠어요. 그 반편들 걸.
욕하지 마세요. 받아넣고 정성껏 조리해 보겠어요.
문제없어요, 튼튼하니까!
하나쯤 만들어질 수 있을것 같아요.
온전한 아기하나 낳아보겠어요.
제기랄, 빈집 뿐일세 그려. 주인은 없는데
하인과 客들이 얼싸붙고 닭 잡아라, 절 받아라, 난장이니 썅.

비로소, 말미아마, 바야흐로다?

거북등에 가 집짓고 늘어 붙는 소라.
잠자는 코끼리 등에 올라 國境들을 그어
놓고 다퉈쌌는 개미 떼.

깊은 地獄의 아구리에 白紙한장 깔고
누운 곰의 행복한 눈.
쇠기둥과 가시줄로 천당을 지어놓고
門 지키는 수고.
貴婦人 발톱에 메니큐어를 칠해 주고
밥 얻어먹는 專門家.

해 저문 바닷가의 구두 修繕家씨,
斷崖 위의 理髮師선생,
山麓의 狩獵家박사,

그만 돌아들 오시지,
三問 草屋 燈비친 창문이 기다리고 있는데.

매미는 언제까지 뜻모를 소리만 울어 예는가?

溫室 속에서 울어예는 매미는 무엇을 먹고
살아쌌는가?
노동은 머리 위에 나비꽃이나 한마리 매미를
달기 위해, 열두 해 긴 세월 밭가는 돼지?

돼지는 노래하라,
밭을 갈면서
씨를 뿌리라. 한알 한톨
피맺힌 말씀으로.

돼지는 말씀하라,
밭을 갈면서
豫報하라 날씨도.
失業케 하라 王도.

한알 한톨
피 맺힌 말씀으로.



<後 話>

숱한 봄 여름, 가을, 잊어진 세월
陽地 바른 盆地 雜草의 떼는
무성케도 이루어 쓰러져 갔다.

무너진 살림살이 해마다 쌓여
마흔 아홉두께의 肥沃한 層을 입었을 때,

그곳에선 肉身 같은 미끈한 줄기가
아름다운 향기를 四地에 뿌리며
하늘거리는 妖花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한 그루 佛典을 꽃 피우기 위하야
先史 五千年은 묻히어 갔고,

한 그루 피어난 聖書의 地層에는
九十九億 創世人民의
몸부림 든 思想이 썩어 있었다.

우리들이 돌아가는 자리에선
무삼 꽃이 내일 날 피어날 것인가?

雜草의 茂盛을 나래 밑에 거느리며
七千年 늙어온 몇 그루 古木-

당신네 말쌈도, 지혜의 法悅도,
文明의 행복도, 그대네 作業도,
늘어붙어 地層 이룰 甲蟲의 무덤.

精神을 장식한 百花 萬象여,
몇 萬年 풀밭 이룬 人種의 가울이여,

허물어지게 쏟아져 썩는 자리에서
무삼 꽃이 내일 날엔 피어날 것인가?

宇宙밖 窓을 여는 맑은 神明은
太陽빛 거느리며 피어날 것인가?

太陽빛 거느리는 맑은 事의 江은
宇宙 밖 窓을 열고 춤춰 흘러갈 것인가?


*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입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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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D-2.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 10선 :
(1.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2. 변신 (정희성)



古典의 어느 숲을 지나온 江물 위에
지금은 무섭도록 헤진 얼굴이 일렁이는데
이것이 글쎄 누구의 얼굴인지
이 江邊에서 많은 사람들이 몸을 던지면서
생각해 보았는지 몰라. *1)
죽은 사람과 죽지않은 사람
淡淡한 얼굴을 하고 흘러서는
그렇게 쉽사리 돌아오지는 않을 것

어느 後光을 따라 나섰을까 조용히
등에 七星板을 깔고 별이나 헤고 있는지
內省의 깊이로 꺼져들어간 江
그 가늠할 수 없는 깊이에서
우리를 붙잡는 무슨 힘이라도 있는가
내가 왜 빠지고 싶은지 나도 몰라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우리가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노라. *2)



沈着한 시간의 녹슨 고기를 낚아
빛나는 面鏡처럼 들여다 볼라치면 몰라
낯설어진 우리의 얼굴을 우리가 몰라
가르쳐 준 것도 귀담아 들은 것도 아닌데
부대낀 언덕 저 편에서 누군가 그런다지
니힐 니힐리아 부르며 그런다지 *3)

晋州남江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놓은
보리알 같이 素朴한 내 거문고 소리여

이 어지러운 강변의 오오 산 죽음
그대 연인이여,
잘리운 손목과 굳은 혀를 들어
지금은 돌아와 노래할 때라
이렇게 불러보는 나의 노래로
너를 파묻고 돌아선 밤 물결은 뒤채고
삶은 또 왜 이다지 잔혹하게
나를 휘어잡는 것이냐



光明은 다시 어둠 속에서
神지핀 누이마냥 亂舞하던 敵과
異邦人의 자취를 흡수해 가버렸지만
빛은 언제나 陰影을 거느릭 찾아들 듯
기껏 우리가 찾은 敵은 우리의 벗
어둠은 항상
새로운 形態로 인식되어야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속에서 죽었을까
神話와 現實의 어중간에서 우리는 失神한다.

빛이 外面한 땅속 깊이 욕망의 불을 넣어
그 무던한 밤과 어둠을 지킨
우리가 미련한 짐승의 자식인 탓일까
마늘과 쑥 대신 풀뿌리 나무껍질을 씹으며
너무도 오랫동안 강인(强靭)한 餘力으로
우리는 우리속에서 우리들과 싸워왔다.

우리?
눈물이 나도록 슬픈 象徵이여



한 번 싱싱하게 핀적이 없는 잎들의 內部엔
여름같은 이 겨울을 깨칠 樹液이 盡한채
온갖 시새움에 서슬이 시퍼런 神經의 가지끝
無辜했던 내 百姓의 머리,
피로에 겨운 스스로의 무게를 가누지 못해
저렇게 숱한 나뭇잎으로
잊고 싶은, 잊고 싶은 記憶들이 나부낀다.

흡사 城 밑의 街燈, 微熱이 이는 氣流속으로
몇마리 나방이가 어둠을 털며 날아들 듯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무기력하게 만들었는가
罪많은 王의 거대한 무덤처럼
하늘 가상이로 드러난 稜線 그 밑에
살아 남은 주검들의 形象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또 香나무 祭器를 닦고 있다.
망우里 朱木나무 숲에서 슬픔이 살아 오른다.
시름 시름 시름이 살아오른다.



그리고 四月이여, 내 子息은 거리에서 죽었다.
죽은 異邦詩人의 싯귀가
한국에서 더 절실해지는
四月에, 라일락나무숲 毒한 香氣속에.

뒤척이는 물결속에선 銃彈이 박힌 머리가
祖國이 무섭다고 중얼거리며 떠오르고
木船의 짐대가 바람결에 부딪치며
그 옛날 義로운 죽음을 말하고 있을 뿐
아무도 그것이 조국의 참된 얼굴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거리에서 죽은 혼령들이 속돌에 스민 듯
市街에는 해마다 投石戰이 벌어지고
최루탄이 없더라도 四月이여,
스스로 우리가 울어야 할 것을 아는데도



革命, 오 너의 엇갈린 文脈.
金 빛 게으른 소가 알 수 없는 音節들을 반추하고
사사미 짐대예 올아서 해금(奚琴)을 혀거를 드로라

데모가 나면 어머니 학교에 안 가도 된대요
눈이 아픈 걸요 다시 곰이나 될까봐

눈을 뺀다, 빌어라, 빌어라, 눈을 뺀다 *4)

어쩌면 終末 같고 어쩌면 始作같기도 한 아침
오늘도 革明, 얄리얄리 出勤을 안해도 되는 날

오늘의 메뉴는 마늘과 쑥
또 한번 당신은 변신할 필요가 있읍니다

시청 청사 위 비둘기 집은 위태로운 아이러니,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 안에서 목잘린
사슴의 이야기를 傳說이라고 생각할 것인지



밤새 우리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지 다만 그것을 모르는 채
日常의 구획된 거리르 빠져나가며
나날이 改編되는 우리들,
夕刊의, 늘 위태한 入口에서
集積의 우울한 낱말을 손에 쥔다.

新羅의 한 조각 불투명한 기왓장으로
史家는 매양 歷史를 들여다 보지만
곱게 미칠 수 없던 時代의
그 갈증나는 아이들은 지금
소리없는 戰爭의 氣流를 타고
하얀 껍데기처럼 흐느끼고 있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밤이 기슭에 닿도록 석굴庵 술집에서
마신 술을 퇴계路에서 토하고 나서
十字架에 허수아비 얼굴을 걸어놓은 사람들.
彈痕이 가신 피부 속으로 황달(黃疸)이 스민듯
잎진 나무들 새로 먼 海原을 바라보며
영혼의 죽은 나무 이파리를 들춘다.

이것이 누구의 얼굴인가.
누구의 얼굴이어야 하는가.



글쎄, 이것이 정말 거짓말인가 몰라
어항 속에서는 물고기가 溺死했다는데
어느 날 우리가 우리속에서 돌연히 죽을지
우리들의 時代에 아이들이 그런다지
니힐 니힐리아 부르며 그런다지
가르쳐 준것도 귀담아 들은 것도 아닌데
노래는 즐겁다, 노래는 끝났다 그런다지
그대 오른 손이 다시금 手琴을 쥐더라도
女人이여,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마디를 풀고 흐를 수 없는 우리,
웃기는 웃어도
웃으라면 내가 그렇게 웃기는 하여도
시시로 파고드는 시름의 주둥이를
종이 접듯 안으로 사릴 줄 아는 슬기로
슬픔을 접어 하늘에다 날릴 날이
다시 노래할 날이 있을까 몰라.  


*1) 「글쎄...몰라」는 朴在森의 無題에서
*2) 「바빌론~」은 구약성서 137章
*3) 「니힐 니힐리아」 송옥의 「何如之鄕」
*4) 「눈을 뺀다...」 제임스·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肖像」에서


*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신춘문예 D-2.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 10선 :
(1.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2. 변신)

3. 회복기의 노래 (송기원)


   1
무엇일까.
나의 육체를 헤집어, 바람이 그의 길고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꺼내는 것들은. 육체 중의 어느 하나도 허용되지 않는 시간에 차라리 무섭고 죄스러운 육체를 바람 속에 내던졌을 때, 그때 바람이 나의 육체에서 꺼낸 것들은.
거미줄 같기도 하고 붉은 혹은 푸른 색실 같기도 한 저것들은 무엇일까.
바람을 따라 한없이 풀려나며 버려진 땅, 시든 풀잎, 오, 거기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을 어루만지며, 어디론가 날려가는 것들은.
저것들이 지나는 곳마다 시든 풀잎들이 연초록으로 물들고, 꽃무더기가 흐드러지고, 죽어있던 소리들이 이슬처럼 깨쳐나 나팔꽃 같은 귓바퀴를 찾아서 비상하고……

   2
누님 저것들이 정말 저의 육체일까요? 저것들이 만나는 사물마다 제각기 내부를 열어 생명의 싱싱한 초산 냄새를 풍기고 겨드랑이 사이에 젖을 흘려서, 저는 더 이상 쓰러질 필요가 없습니다. 굶주려도 배고프지 않고, 병균들에게 빼앗긴 조직도 아프지 않습니다. 저의 캄캄한 내역(內譯)마저 젖물에 녹고 초산 냄새에 스며서, 누님, 저는 참으로 긴 시간 끝에 때 묻은 시선을 맑게 씻고 모든 열려 있는 것들을 봅니다. 모든 열려 있는 것들을 노래합니다.
  
격렬한 고통의 다음에는 선명한 빛깔들이 일어서서 나부끼듯이
오랜 주검 위에서 더없는 생명과 빛은 넘쳐 오르지.
깊이 묻혀 깨끗한 이들의 희생을 캐어내고,
바람의 부드러운 촉루 하나에도
돌아온 사자(死者)들의 반짝이는 고전을 보았어.
저것 봐. 열린 페이지마다 춤추는 구절들을.
익사(溺死)의 내 눈이 별로 박히어 빛을 퉁기는 것을.
모든 허물어진 관련 위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질서를.
  
내가 품었던 암흑의 사상은 반딧불 하나로 불 밝히고
때 묻은 환자들은 밤이슬에 씻어냈어.
수시로 자라는 번뇌는 은반의 달빛으로 뒤덮고
눈부신 구름의 옷으로 나는 떠오르지.
  
포도알들이 그들 가장 깊은 어둠마저 빨아들여
붉은 과즙으로 융화하는 밤이면, 그들의 암거래 속에서
나도 한 알의 포도가 되어 세계를 융화하고.

   3
무엇일까.
밤마다 나를 뚫고 나와 나의 전체를 휘감아 도는 은은한 광채는.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스며나는, 마치 보석과도 같은 광채는.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무서운 저 광채 때문에 깊은 밤의 어둠 속에서도 나는 한 마리 야광충이 되어 깨어 있어야 하지. 저 광채 때문에 내 모든 부끄러움의 한 오라기까지 낱낱이 드러나 보이고, 어디에도 감출 수 없던 뜨거운 목소리들은 이 밤에 버려진 갈대밭에서 저리도 뚜렷한 명분으로 나부끼지. 두려워 깊이 잠재운 한 덩이 뜨거운 피마저 이 밤에는 안타까운 사랑이 되어 병든 나를 휩쓸지, 캄캄한 삶을 밝히며 가득히 차오르지.
무엇일까.
밤마다 나를 뚫고 나와 나의 전체를 휘감아 도는 은은한 광채는.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스며나는, 마치 보석과도 같은 광채는.


*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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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D-2.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 10선 : 
(1.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2. 변신, 3. 회복기의 노래) 
  
4.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 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수정,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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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D-2.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 10선 :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변신, 회복기의 노래, 사평역에서) 
 
5. 이사 (원동우)  
  
  
아이의 장난감을 꾸리면서 
아내가 운다 
반지하 네평 방을 모두 치우고 
문턱에 새겨진 아이의 키눈금을 만질 때 풀썩 
습기찬 천장벽지가 떨어졌다 
 
아직 떼지 않은 아이의 그림 속에 
우주복을 입은 아내와 나 
잠잘 때는 무중력이 되었으면 
아버님은 아랫목에서 주무시고 
이쪽 벽에서는 당신과 나 그리고 
천장은 동생들 차지 
지난번처럼 연탄가스가 새면 
아랫목은 안되잖아, 아, 아버지 
 
생활의 빈 서랍들을 싣고 짐차는 
어두워지는 한강을 건넌다 (닻을 올리기엔 
주인집 아들의 제다가 너무 빠르다) 갑자기 
중력을 벗어난 새떼처럼 눈이 날린다 
아내가 울음을 그치고 아이가 웃음을 그치면
중력을 휘청거리는 많은 날들 위에 
덜컹거리는 서랍들이 떠다니고 있다 
 
눈발에 흐려지는 다리를 건널 때 아내가 
고개를 돌렸다, 아참 
장판 밑에 장판 밑에 
복권 두 장이 있음을 안다 
강을 건너 이제 마악 변두리로 
우리가 또 다른 피안으로 들어서는 것임을 
눈물 뽀드득 닦아주는 손바닥처럼 
쉽게 살아지는 것임을 
 
성냥불을 그으면 아내의 
작은 손이 바람을 막으러 온다 
손바닥만큼 환한 불빛 
  
      
* 199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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