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신춘문예 D-7.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테, 정독 2023. 11. 23. 06:42

 
 
 
신춘문예 D-7.
(중앙일간지 리뷰, 2/8) 동아일보 신춘문예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는 신춘문예는? 1915년의 매일신보였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서울신문이 되겠군요.
정식으로 '신춘문예'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게 1920년, 동아일보에서 최초로 '신춘문예' 타이틀을 걸고 시작한 해가 1925년이므로 이제는 거의 백 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합니다. (조선일보는 1928년부터 시행했다고 합니다.)
그 역사만큼이나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도 기라성 같은 면면을 자랑해온 편이죠. 또 여전히 가장 명성이 높고 영향력도 큰 곳들 중 하나예요. 그만큼 경쟁률 또한 가장 치열하기도 하고요. 유독 심사평들도 매우 쌀쌀맞기만 합니다. 
동아일보의 최근 5년간 신춘문예 당선작 및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요약입니다. ;
 
2019년 : 최인호, 캉캉 (심사 - 김혜순, 조강석) 
"‘캉캉’이 당선된 이유는 문장의 대담함과 사유의 힘이 과장 없이 잘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이미지들이 신선하면서도 힘 있는 문장을 통해 전개되고 있으며 진술 대신 묘사를 통해 심적 상태를 제시하는 요령을 확보한 작품이다." 
2020년 : 김동균, 우유를 따르는 사람 (심사 - 김혜순, 조강석)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일별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개성적인 목소리가 드물다는 것이었다. 동화적 상상력에 기대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지만 매력적인 문장을 찾기 어려운 작품이 다수 있었다. 공들여 말들을 조직해 놓았지만 그 이음매만 불거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쉽게 몇몇 기성 시인의 영향을 떠올릴 수 있는 작품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2021년 : 이근석, 여름의 돌 (심사 - 문정희, 조강석) 
"우선 드는 생각은 다양성이 아쉽다는 것이다. 질적으로 고르지만 단정한 묘사와 소소한 토로가 주를 이뤘다. 예년보다 표준형에 수렴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은 모험과 담론이 활성화되지 않는 시단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해 슬쩍 미안해지기도 했다."
2022년 : 채윤희, 경유지에서 (심사 - 정호승, 조강석)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대체로 무난했다. 달리 말하면 위험도 모험도 드물었다는 말이다. 안정적 기량이 우선인 것은 틀림없지만 개성적인 목소리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균일함은 우리가 보낸 한 해의 격동과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시가 삶의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시대의 삶의 환경과 동떨어진 기예를 겨루는 경연도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2023년 : 권승섭, 묘목원 (심사 - 정호승, 조강석) 
"‘묘목원’에 대한 숙고가 있었다. 투고된 작품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고려함과 동시에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는 한 작품을 내밀어 놓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견이 오고 갔다. 그 결과, 심사위원들은 과장과 작위가 없이 단정한 문장을 통해 체험의 일단을 문제적인 시적 상황으로 변환시키는 기량을 믿어보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사건에서 중층적인 의미가 배어나게 하는 시적 구성도 돋보였다. 군더더기 없이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역시 경향신문의 김행숙 시인처럼 동아일보 역시 최근 5년 동안의 심사를 주로 맡았던 인물은 연세대 조강석 교수입니다. 시인보다는 평론가의 영향력이 더 컸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이건 일장일단이 있으므로 딱히 우열과는 다른 성격이겠죠. (마찬가지로 동아일보 투고를 준비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일이면 주중의 일과들이 마무리될 것이므로 금주 안에 어떻든간에 투고까지 마치려면 사실상 오늘이 퇴고의 마감일이겠습니다. 각자의 최선을 다해 끝까지 분발하시기 바라며,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
 
 
묘목원 (권승섭)  
  
 
버스를 기다린다 신호가 바뀌고 사람이 오가고
그동안 그를 만난다

어디를 가냐고
그가 묻는다

나무를 사러 간다고 대답한다

우리 집 마당의 이팝나무에 대해 그가 묻는다

잘 자란다고
나는 대답한다

그런데 또 나무를 심냐고 그가 묻는다

물음이 있는 동안 나는 어딘가 없었다
없음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무슨 나무를 살 것이냐고 그가 묻는다

내가 대답이 없자
나무는 어떻게 들고 올 것이냐고 묻는다

나는 여전히 말이 없다
먼 사람이 된다

초점이 향하는 곳에 나무가 있었다

잎사귀로는 헤아릴 수 없어서

기둥으로 그루를 세야 할 것들이
무수했다

다음에 나무를 함께 사러 가자고
그가 말한다

아마도 그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그를 나무라 부른 적이 있었는데
다시금 지나가는 비슷한 얼굴의 나무는
 
 
*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