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성(外城)
박형준
나는 닻에 묶여 있는 배를 바라본다. 폭풍이 지나간 하늘에도 구름이 닻처럼 떠 있다. 먼바다로 나아가 밤의 가장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린다는 것. 배도 하늘도 하루쯤은 고요하게 쉬어야 한다. 벌써 저녁이 온다. 빛이 어둠 속에서 태어나고 있다. 저녁 바다에 떠 있는 빛들, 바다 위를 날아가는 나비떼 같다. 어서 오라고, 어서 전구마다 불을 가득 켜고 먼바다로 나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어부들의 지친 삶 속에서도 벌써 힘줄이 나비떼처럼 불끈불끈 일어선다. 어두운 바다 위를 미끄러지는 빛들. 저녁이 오면 하늘의 닻인 구름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가장 맑은 별들이 떠오른다. 나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별들을 지도 삼아 나비보다 영롱한 빛들을 낚는다.
밤에 홀로 눈 뜨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라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모두들 침묵하는데, 그 침묵을 혼자서 응시한다는 것은 무섭다는 뜻. 모두들 진실 앞에서는 떳떳할 것 같지만, 사실 어떤 진실 앞에 서 있게 되는 것은 눈을 감고 싶은 충동.
텅 빈 교각 위에 우뚝 선 성채 같은 저 불빛을 보라.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빛나는 도시의 외성은 완강한 침묵으로 버티고 선 채 흰 빛으로 부서지고 있다. 그 안으로 걸어들어가면 익명의 영혼들이 무슨 진실로 이 밤을 떠돌 것인가.
-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창비, 2020)
:: 메모 ::
이제 나도 퇴고를 시작하련다.